이상행동의 판별 기준
일반적으로 이상행동은 객관적인 관찰과 측정이 가능한 개인의 부적응적인 심리적 특성을 의미하며, 정신장애는 특정한 이상행동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이러한 이상행동에는 인간의 다양한 심리적 측면, 즉 인지, 정서, 동기, 행동의 측면에서 개인의 부적응을 초래하는 특성이 포함된다.
과연 ‘이상행동’은 어떻게 정의하고 규정할 수 있는가? 한 사람의 행동이나 심리 상태를 ‘정상적’ 또는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할 때, 그 판단 근거는 무엇인가? 정상행동과 이상행동은 어떤 기준에 의해서 구별될 수 있는가?
이상행동과 정신장애를 정의하는 기준은 학자마다 다양하게 주장되고 있다. 현재 모든 이상행동과 정신장애를 포괄할 수 있는 단일한 정의나 기준은 없다. 그러나 임상 심리학에서 보편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이상행동의 판별기준은 크게 적응적 기능의 저하 및 손상, 통계적 규준의 일탈, 주관적 고통과 불편감, 문화적 규범의 일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적응적 기능의 저하 및 손상
이상행동과 정신장애의 정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적응이다. 인간의 삶은 개인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적응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적응의 관점에서 볼 때, 이상행동은 개인의 적응을 저해하는 심리적 기능의 손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즉, 개인의 인지적·정서적·행동적·신체생리적 기능이 저하되거나 손상되어 원활한 적응에 지장을 초래할 때, 부적응적인 이상행동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주의 집중력과 기억력의 저하, 과도한 불안과 우울, 무책임하거나 폭력적인 행동, 식욕과 성욕의 감퇴 등은 일상적 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적·직업적 부적응을 초래하게 되므로 이상행동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이상행동은 직업적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하고, 대인관계의 갈등을 유발함으로써 개인의 적응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행동을 적응적 기능의 손상으로 판단하려는 관점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적응과 부적응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과연 어느 정도의 부적응 상태를 초래하는 심리적 기능의 저하를 이상행동을 보아야 하느냐는 문제점이 있다. 둘째, 적응과 부적응을 누가 무엇에 근거하여 평가하느냐는 점이다. 개인이 적응 여부는 평가자의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고 평가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부적응이 어떤 심리적 기능의 손상에 의해 초래되었는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통계적 평균으로부터의 일탈
인간의 어떤 특성을 측정하여 그 빈도 분포를 그래프로 그리게 되면 종을 거꾸로 엎어 놓은 모양의 정상 분포를 타나내는 경향이 있다. 즉, 평균값에 해당되는 사람의 수는 많은 반면, 평균에서 멀어질수록 그 수는 감소하는 추세를 나타내게 된다. 이러한 통계적 속성에 따라서 평균에서 멀리 일탈된 특성을 나타낼 경우 ‘비정상적’이라고 보는 것이 통계적 기준이다. 이러한 기준에서는 평균과 표준편차라는 통계적 규준에 의해 정상성과 이상성을 평가한다. 즉, 평균에서 2배의 표준편차 이상 일탈된 경우에 이상행동으로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통계적 기준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경우는 지적 장애다. 지적 장애는 지능검사의 결과에 의해서 판정되는데, 대부분의 지능검사는 평균이 100점이고 표준편차가 15점으로 되어 있다. 즉, IQ가 100인 사람은 같은 또래의 평균에 해당하는 지능을 지닌 사람이다. 반면, IQ가 평균 100에서 2배의 표준편차, 즉 30점 이상 낮은 70점 미만일 경우에 지적 장애로 판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적 기준은 이상행동을 판별하는 데 다음과 같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첫째, 평균에서 일탈된 행동 중에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일탈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IQ가 130 이상인 사람은 통계적 기준으로 보면 비정상적이지만 이들의 특성을 이상행동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통계적인 기준을 적용하려면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측정하여 그 평균과 표준편차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행동을 측정하여 이러한 통계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흔히 평균에서 2배의 표준편차만큼 일탈된 경우를 이상행동과 정상행동의 경계선으로 삼고 있지만 이러한 통계적 기준은 전문가들이 세운 편의적 경계일 뿐 이론적 이거나 경험적인 타당한 근거에 기초한 것은 아니다.
주관적 불편감과 개인적 고통
이상행동과 정신장애를 판단하는 또 다른 중요한 기준은 주관적 불편감과 개인적 고통이다. 즉, 개인으로 하여금 현저한 고통과 불편을 느끼게 하는 행동을 이상행동이라고 보는 것이다. 개인의 부적응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개인이 심히 고통스럽게 느끼는 심리적 상태나 특성은 이상행동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사실, 정신 건강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 중에는 현저한 적응 곤란뿐 아니라 주관적인 고통과 불편감을 지닌 사람이 많다. 불안, 우울, 비애, 분노, 절망과 같은 심한 심리적 고통과 불편감은 개인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
주관적 고통의 기준 역시 이상행동을 정의하는 데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심리적인 고통을 경험한다고 해서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질병으로 고통받거나 사망하는 경우에 심리적 고통을 느끼는 것은 매우 정상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이 처한 상황에 비해서 현저하게 심한 주관적 고통을 경험할 때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고통의 적절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둘째, 어느 정도 심한 주관적 고통과 불편감을 초래할 경우에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하느냐는 문제점이 있다. 물론 개인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느끼는 주관적인 고통이 중요한 기준이지만, 사람마다 고통을 느끼고 참고 표현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일관성 있는 적용에 어려움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기준의 가장 치명적인 한계는 매우 부적응적인 행동을 나타내면서도 전혀 주관적인 고통과 불편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조증 증세를 나타내는 사람의 경우에는 부적응적 행동을 나타내지만 자신은 주관적으로 매우 즐겁고 의기양양한 기분을 느낀다.
문화적 규범으로부터의 일탈
어느 사회나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따라야 하는 문화적 규범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부모-자녀 관계, 친구 관계, 이성 관계, 학교생활, 직장생활 등 다양한 사회적 활동 장면에서 자신의 역할에 따라 취해야 할 행동 규범이 존재한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 원만하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화적 규범을 잘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적 규범에 어긋나거나 일탈된 행동을 나타낼 경우에 이상행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적 기준 역시 몇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문화적 상대성의 문제다. 문화적 규범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문화에 따라 다르다. 한 시대 또는 한 문화에서 정상적 행동이 다른 시대와 다른 문화에서는 이상행동으로 여길 수도 있다. 따라서 문화적 기준은 필연적으로 시대와 문화에 따라 상대적으로 적용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둘째, 문화적 규범 자체가 바람직하지 못할 경우에도 이를 적용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문화적 규범 중에는 기득권자 또는 사회적 강자의 이익을 유지하거나 강화하기 위한 것이 많다. 따라서 흔히 창조적이고 개혁적인 선구자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잘못된 규범을 비판하고 이에 저항하는 행동을 나타낸다. 과연 이러한 경우에도 문화적 규범이 개인 행동의 정상성과 이상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적용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정신장애의 분류 체계 : DSM-5
인간이 나타내는 이상행동과 정신장애는 매우 다양하며 개인마다 독특하다. 이상심리학은 이렇게 다양하고 독특한 이상행동을 정확하게 관찰하고 유사한 특성에 의해서 분류하는 작업에서 출발한다. 분류 작업은 인간이 복잡한 현상을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단순한 형태로 정리하는 과정이다. 과학의 가장 기본적 작업은 현상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분류하는 작업이다. 연구 대상인 특정한 현상들의 공통점이나 유사성에 근거, 집단화하여 분류한 후, 그러한 집단적 현상의 원인이나 치료 방법을 연구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정신장애 분류 체계인 DSM-5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5판(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5th edition)』으로서 2013년에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발표한 정신장애 분류 체계다. DSM-5는 정신장애를 20개의 주요한 범주로 나누고, 그 하위 범주로 360여 개 이상의 장애를 포함하고 있다.
DSM-5에 포함된 정신장애의 20개 범주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DSM-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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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안장애
2) 우울장애
3) 양극성 관련 장애
4) 강박 및 관련 장애
5) 외상 및 스트레스 관련 장애
6) 정신분열증 스펙트럼 및 기타 정신증적 장애
7) 성격장애
8) 신체증상 및 관련 장애
9) 해리장애
10) 급식 및 섭식장애
11) 수면-각성장애
12) 신경발달장애
13) 물질-관련 및 중독장애
14) 성기능장애
15) 성도착장애
16) 성불편증
17) 파괴적, 충동통제 및 품행장애
18) 배설장애
19) 신경인지장애
20) 기타 정신장애 범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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