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혹은 도피
수업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교수님이 “오늘은 깜짝 퀴즈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 학점에 큰 비중으로 반영될 것입니다.”라고 발표했다면, 공부를 안 한 학생은 큰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신체적으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빨라지며, 손에서 땀이 나고 동공이 확대될 것이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긴박한 상황에서 우리는 신체에 비축된 자원들을 모두 이용해 생존을 위해 반응할 준비를 한다. 캐논(Walter Cannon, 1871~1945)은 이런 반응을 “투쟁 혹은 도피반응(Fight-or-Flight reaction)”이라고 지칭했다. 교감 신경계의 활성화로 인해 신체는 집중적으로 준비해서 대응하거나 도피하기 위한 운동 기능을 준비시킨다.
스트레스에 대한 신체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의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첫 번째 경로는 자율신경계의 활성화이다. 자율신경계는 교감 신경계와 부교감 신경계로 구분되고, 교감 신경계는 스트레스 반응에서의 흥분 반응을 보이며, 다양한 심혈관계, 소화계와 호흡계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지각하게 되면 시상하부에 의하여 교감 신경계가 활성화되며, 여러 가지 생리적 각성반응을 보인다.
교감 신경계의 활성화를 통해 부신수질에서는 에피네프린과 노프에피네프린과 같은 카테콜라민을 분비하게 된다. 교감 신경계와는 반대로 부교감 신경계는 스트레스 상황이 지나간 이후에 안정된 상태로 되돌려 놓는 기능을 한다.
두 번째 경로는 HPA축의 활성화이다. HPA축은 시상하부(hypothalamus), 뇌하수체(pituitary), 그리고 부신피질(adrenal cortex)이 관여한다. 스트레스를 지각하게 되면 시상하부는 코르티코트로핀 분비 호르몬을 분비하여 뇌하수체를 자극하게 된다.
뇌하수체는 이어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을 분비하여 부신피질을 자극하며, 부신피질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글루코코르티코이드를 분비한다. 인간의 가장 대표적인 스트레스 호르몬인 글루코코티코이드를 코르티솔이라고 한다. 코르티솔은 신체의 에너지 자원을 활용하여 혈당을 높이고 투쟁 혹은 도피 반응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코르티솔은 위협적인 상황에서 스트레스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기는 하지만, 스트레스가 장기간 지속됨으로 인한 코르티솔의 과다 분비 상태는 우울증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 반응 및 면역력 저하로 인한 질병 발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반적인 증후군
위협적인 상황에서 스트레스에 잘 적응하는 것은 생존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만약에 스트레스가 오랜 시간 지속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치매 환자를 간병하거나 오랫동안 어떤 사람의 폭력을 견뎌야 한다면 우리 신체도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있는 자원이 고갈될 것이다.
헝가리의 내분비학자 셀리에(Hans Selye, 1907~1982)는 스트레스를 최초로 연구한 사람 중 하나로, 우리의 신체가 스트레스에 저항하기 위한 시도를 ‘일반적응 증후군(general adaptation syndrome)’이라는 이론을 통해 정립했다. 일반적응 증후군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 단계는 경고 단계로, 위협적인 상황에 대면했을 때 교감 신경계의 활성화로 인해 신체는 비축해 온 자원을 활용하여 투쟁 혹은 도피 반응을 준비한다. 신체에서는 에피네프린을 분비시키고, 신체의 심혈관계, 소화계 및 호흡계는 모두 반응한다. 경고 단계는 긴급 상황에서 단기적인 스트레스원이 존재할 때에는 적응적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저항 단계로,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하여 위협에 대처하고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대뇌피질이 활성화되어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등, 스트레스에 대처를 하게 된다. 스트레스의 심각도에 따라 저항 단계가 얼마나 지속되는지 결정하게 된다. 저항 단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앞에서 언급한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고, 우리의 몸에서 비축한 자원을 사용하게 된다.
마지막 단계는 소진 단계이다. 소진 단계는 스트레스 상황에 견딜 수 있는 자원이 모두 고갈되고, 위협을 극복하지 못하여 실패했을 때 나타나는 단계이다. 신체적으로는 면역기능 그리고 심혈관 기능이 저하되며, 위염이나 고혈압과 같은 질병에 취약해질 뿐만 아니라 사망에 까지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심리적으로는 불안과 우울 증상을 경험하며, 여러 정신장애에 취약해질 수 있는 단계이다.
스트레스에 대한 평가
앞서 말했듯이, 같은 스트레스를 경험해도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는 개인차가 있게 마련이다. 라자러스와 포크만에 의하면, 스트레스원 보다는 개인이 스트레스 사건을 어떻게 평가하고 지각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있다.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사람이 상황에 대해 지각하는 위협과 개인의 대처 능력과 같은 평가가 스트레스 수준을 좌우한다. 이런 과정을 크게 두 가지 과정인 일차 평가와 이차 평가로 구분하였다.
일차 평가(primary appraisal)는 사람들이 처음 스트레스 사건에 대면하면, 그 사건이 무엇이며, 나의 안녕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스스로 “이 사건은 나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인가?”와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보통 이 과정에서 미래에 나의 안녕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면 위협을 느낄 수 있다.
일차 평가 이후, 이차 평가(secondary appraisal)과정에서는 스트레스원에 대한 본인의 대처 능력을 평가하게 된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원이 환경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스스로 “나는 이 사건을 대처할 만한 자원이 있는가?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무엇인가? 예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을 때 잘 이겨 냈는가?”와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본인이 어떤 행동을 해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스트레스를 더 적게 느낀다.
돌봄과 어울림
비슷한 정도의 스트레스를 경험해도,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모습에는 남녀 차이가 있다. 타일러와 동료들은 과거의 전통적인 스트레스 연구들이 남성 중심이라는 한계점을 지적하며, 스트레스 반응에 있어서의 남녀의 차이를 연구하면서 2000년도에 ‘투쟁 혹은 도피반응’과 대조가 되는 돌봄과 어울림(tend and befriend)이라는 스트레스 반응 이론을 만들었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남성 조상들에게는 도피 혹은 투쟁 반응이 더 적응적일 수 있었겠지만, 어린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여성들에게는 위협 상황에서 오히려 주변에서 지지를 얻고 서로 협력하는 것이 더 생존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하였다.
즉, 오히려 스트레스 상황에서 여성들은 사회적 협력을 하고, 자손을 돌보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은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오히려 자손을 돌보는 행위를 더 많이 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남성들은 음주나 운동과 같은 주의 분산을 할 수 있는 스트레스 반응을 선호하는 반면, 여성들은 친구와 만나거나 전화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반응을 더 만이 보이는 것도 이오 비슷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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